<주일을 기다리면서>
이처럼 사랑하사(요한복음 3:1-3, 14-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가 한 번쯤은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바로 이 ‘거듭남’, 즉, 다시 태어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적인 사고에 익숙한 니고데모에게, 그가 잘 아는 민수기 21장 사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을 예로 들어 설명하십니다.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아났던 것처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요 3:16)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개념이 아니라, 삶으로 체험되는 은혜이기에 니고데모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반면, 또 다른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뒤, 눈에 비늘이 벗겨지며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는 이 ‘거듭남’의 비밀을 몸소 깊이 체험하였기에, 이후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며,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 전파와 선교의 수고를 마땅히 감당할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이 복음, 이 거듭남이 무엇이기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그가, 이제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까지 고백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묵상해봅시다.
첫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오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이처럼 사랑하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귀하신 아들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명의 주권을 가지신 그분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그 사랑이 바로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 너무도 낭비처럼 보이는 그 사랑을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에 그저 은혜라 고백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둘째,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시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하여 오히려 충격적입니다.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공덕을 쌓는 자마다”, “율법을 완성한 자마다”가 아니라, 오직 “믿는 자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과 계명을 고행처럼 지켜왔던 니고데모에게 이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돌아오기만 하면,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됩니다. 마치 아기의 출산을 위한 모든 수고를 어머니가 담당하듯, 우리의 구원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감당하셨습니다.
셋째,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은 미래에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그때부터 영생의 삶이 시작됩니다(요 5:24). 세상은 화려해 보여도 뿌리 없는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믿는 순간부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돌보시는 삶이 펼쳐집니다. 성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고, 성자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할 때에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고 계십니다.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성삼위 하나님의 이토록 세심한 돌보심을 받는 것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세상 속에서 우리의 참된 자존감입니다. “이런 사랑으로도 안 되겠니?”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복음을 들고 당당히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성삼위 하나님과 함께 영생의 삶을 오늘도 힘 있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자가 그 사랑>
https://youtu.be/Ivp6Tb3pc24?si=H9_HT1CNbjsuCeGA
새성남교회 담임목사 강정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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